[19] 위선의 매너

'매너' 라는 것. 

사람이 사람과의 사이에서 지켜야 할

일종의 '룰'과 같은 것.

실제야 어떻든 간에

그런건 중요하지 않은 것.

보여지는 형식에 얽매이는

그런게 가장 중요해지는 것.

사람이 사람과의 사이에서

매너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나와 당신과의 관계엔 

어느정도의 위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


위선
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거짓된 선(善)" 이라는 말이니까.

진심이 담기지 않은, 보기 좋은 매너는

결국 위선이라는 이야기인거지.

작금의 매너라는 말은 이미 

'배려'라는 의미로부터 떨어져나간지 오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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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인데, '정글은 언제나 하레와 구우(맑은 뒤 흐림)'나 

그 후속작인 '하레구우'를 보다보면,

구우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대답들이

어쩌면 가장 진실에 닿아있는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진실한 모습이 우스워지는 세상...

 

뭔가 아이러니 하지 않아?

by 지구성인 | 2007/12/03 22:27 | 어른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이기주의, 현상과 의지의 대립.

 

논제는,

"의도하지 않은 이기적 현상은 이기주의인가 아닌가" 

였다.

이기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행함은, 확실한 이기주의다. 

이기주의라는 것의 정의를 따져볼때도 분명히 정답이다.

그렇다면, 이기적이라는 걸 모르고 행한 이기적 상황은

도의적으로는 이기주의가 성립할 수 없다고 쉽게 말해버릴

수 있지만, 실은 의지와 현상은 구분되는 것이므로

행위자의 이기주의는 성립하지 않을지라도

 '이기적상황'이라는 현상은 그 현상 자체로서도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고로,

이기적상황의 대상이 되는 객체는, 주체로부터의 현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이 확실시 될 때, 객체에게만큼은

 '이기적이다'라고 말을 하는 것또한 확실시되어버린다.

 

딜레마라고?

 

아니다.

왜냐하면, 의지로써의 이기주의는 확실히 딜레마에 빠질지

모르겠지만 현상으로써의 이기주의는 이미 성립된다.

현상은, 의지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현상 그 자체로도

성립할 수 있으므로.

 

<현상의지와는 전혀 다르며, 관계또한 할 수 없다.

고로 의지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현상 그 자체로써

성립할 수 있게 되는것.>

by 지구성인 | 2007/12/03 21:48 | 죽은생각의 기록 | 트랙백 | 덧글(0)

시간의 체감

나이가 들어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처럼 느껴지는건,

우리가 그만큼 시간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지속적인 고통을 받게 되면,

점차 통각이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아얘 통증이 없어지는 것 처럼,

 

시간의 흐름에 길들여져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그 감각이

둔감해져버린거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 채로

얼마동안이든 흘려보내다가

문득, 아 이만큼이나 흘러갔구나

하고 느끼게 되어버린다는 이야기.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어디서부턴가 마비되어버리다가

조금씩 죽어가는 건가.. 사람이란?


by 지구성인 | 2007/12/03 21:39 | 어른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집단'에서의 '성향비율'에 관한 고찰

Report : '집단'에서의 '성향비율'에 관한 고찰  

 

속설 : "어디를 가든 ~한 사람을 꼭 있어"

 

가설 :

  1. 집단이 구성될 때 이미 비율이 맞춰져서 구성되어버림.

                                                                   (운명론)

  2. 동일성향군에서도 미세한 차이가 증폭되면서 성향비를 맞춤.

                                                                   (비교환경론)

 

 

증명 :

ㅇ 가설1과 가설2를 종합해서, 가설1의 경우엔 가설2의 사실이

    전제해야 하고, 가설2의 경우엔 가설1의 전제가 다시 전제함.

    즉, 상대적인 미세한 성향조차 일정비율로 결정되어 태어나고

    그 일정비율이 집단이라는 특정 환경 속에서 상대적으로 비약됨.

  

ㄱ. 여러가지 성향에서의 경우의 수가 미리 비율에 맞게 내제된 채

    탄생하게 됨.

ㄴ. 특정 '집단'이라는 비교의 환경에 놓이면, 내제된 차이가 크게

     나타나게 됨.

ㄷ.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기보다, 애초에 변화할 사람조차

     결정되어 있었음.

 

예시.

ㅇ 자석을 반으로 부러뜨려도, 모두 N극이었던 곳에서조차

    그 미세한 차이가 대립하면서 N과 S로 다시 나뉘어짐.

 

 

 

- 이 상 -

 

 

※ 단, 집단자체의 성향은 그 구성원들의 본래 성향의

   다수결에 따른다.

예) A집단은 '대체로' 소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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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쓸데없는 걸 분석해버리고 말았다.

by 지구성인 | 2007/12/03 21:37 | 어른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인류의 이기심에 관한 생태학적 측면에서의 고찰


인류는, 소비적인 종족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할 정도로 소비족인 성향만을 갖고 있다.

인류 이외의 지구상에 사는 생물은, (만약 인류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 충분히 온전하게 현 상황을 유지·지속시키는 삶을

살고있다. 흔히 과학시간에 배우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측면으로

볼 때, 양자는 모두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해내고 있지만, 어느

한 쪽에 비중이 더 크기 때문에 그 큰 비중의 이름을 차용해 사용

하고 나머지 하나의 이름은 버리는거다. 그렇지만 그 버려진 이름

의 삶 속에 분명 생태학적으로 각 군들의 개체수와 생산 및 소비율

이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렇게 상호보완적으로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 흔히 말하는 '올바른' 생태계의 모습인데 그 중 유독

'인간만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이 가진 소비성은, 그 이면에 흔히 내제하는 생산이라는 측면

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분명, 환경(지구에 포함되는

인류 이외의 것들을 지칭하는 의미로의)에게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얻었다면, 그만한 대가를 생산이라는 측면으로 지불해야 하는

게 생태학적인 환경적 측면에서의 올바른 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하나의 가설.

 

 '인류는 어쩌면, 지구 이외의 곳에서 지구로 건너온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는 의외로 간단하게 전개된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종족상의 특성은, 지구가 아닌 원래

인류가 살고 있던 세계를 기준으로 맞춰져있는거고, 그래서 지구의

생태계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

자가생산을 할 수 없는 인류는, 스스로의 종을 유지시키기위해

무한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소비한만큼의 에너지를 지구상의 다른

개체들을 '먹어버림'으로써 대상 개체가 가진 에너지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취한 에너지로 자신들의 '항유지 필요

에너지량'을 충족시키고 나면, 그 어떤 환경에게 돌아가는

행위라도 하지 않는다. 

인류가 흔히 말하는 생산적인 행위라고 불리는 일체의 행위들은,

인간 기준에서의 생산이지 결코 환경중심의 생각이 아니다.

인류는 분명, 자신들이 머무르는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조화'를 인위의 잣대를 들이대

'변화'시키고, 그렇게 지구 전체를 '인간화' 시켜버리고나면,

더이상 자신들이 에너지를 얻어야하는 '인류이외의 다른 개체'가

사라져버려 인류는 분명 괴멸하게 될 것..

그걸 도망치기 위해서, 인류는 비겁하게,

'지구이외의 인류의 터전'이라고 부르는 '또다른 제물'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은

태생적으로,

지극히 이기적이다...

by 지구성인 | 2007/12/03 21:3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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